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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11절.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주식시장의 숫자를 보고 있습니까?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와 신문을 즐겨 읽습니까?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보고 듣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믿음 또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하는 그대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떤 분은 거창하고 화려한 미사여구로 기도하지만, 그 어떤 하나님의 역사가 없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예수님 안에 거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다면 우리의 기도는 응답될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아니면, 그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한복음 16:24절만을 좋아합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하지만 요한복음 16장 전체를 읽어보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수많은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외치는 자들이, 사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 안에 거하는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을 회개합니다.
날마다 회개합니다.
철저히 회개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회개할 것입니다.

"예배", "거룩", "신령한 은사", "하나님의 신부"... 좋습니다.
하지만 회개는 날마다 자신을 씻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용서를 구하며,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입니다.

 

어찌 신령한 은사를 경험하였기에, 더 이상 회개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더 큰 믿음과 은사를 가진 사람일수록, 마귀의 유혹은 더 강하며,
회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바울사도의 고백을 잊는 것입니까?

(내가 죄인의 우두머리이다; 딤전1:12~10).
어떤 사람들이 바울의 "죄인의 괴수"라는 표현을 단지 "바울의 겸손"으로 다룹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을수록, 자신의 추악함이 더 드러남을 어찌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 그러므로 바울의 고백은 지극히 당연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순결함, 말할 수 없는 고귀함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바울처럼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며, 진리입니다.

무엇을 듣고 있습니까? 세상의 뉴스와 정보, 가십거리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음성입니까?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세상의 부패와, 부와 권력의 횡포를 보며, 권세자, 부자를 기도하십니까? 아니면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며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예수님의 눈동자입니까?

 

우리가 보는 것을, 우리가 듣는 것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의 얼굴을 마음에 새기시길...
부와 권세가 아니라, 예수님의 가난함과 낮아짐을 사모하시길...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 축복이 날이 여러분과 제 앞에 놓여지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의인의 간구하는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